축구이야기2017. 2. 13. 01:52
     

오랜만에 쓰는 축구 이야기.


지난 화요일 (2월 7일), 울산의 문수구장 (빅크라운)을 찾았다.


올 해는 작년에 비해 일찍 시즌이 시작 되었다. 원래 2017 시즌의 개막은 3월 이지만, 울산에겐 그 시기가 좀 더 일찍 찾아오게 됐다. 전북의 ACL 출전박탈이 '최종결정' 되면서 지난 시즌 4위 였던 울산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너무도 갑작스런 일이라 외국에서 전지훈련 중이었던 울산에겐 좋은 일이기도 했지만, 걱정과 우려가 먼저 앞섰던 일이기도 했다. 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윤정환 감독이 일본으로 떠나고, 과거 인천의 감독이었던 김도훈 감독으로 바뀌었다. 선수단도 대부분 새로운 선수들이 구성돼 거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울산에겐 제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나마 위안이 됐던 건, 울산의 홈구장 '빅 크라운(호랑이굴)' 에서 경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울산은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었다. 감독도, 선수도 .. 상대는 홍콩 프리미어 리그의 강호 '키치 SC'. 그들은 시즌 중. 울산은 비시즌. 본래의 경기력이었더라면 울산은 한 수 위의 전력이었을테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는 것.


너무도 궁금했다. 준비는 물론 거의 안... 아니 아예 안 돼 있었겠지만, 김도훈과 새로운 선수들의 조합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새롭게 단장한 빅크라운의 모습이 더 궁금했었다. 물론 일 때문이긴 했지만 마침 울산에 있었고 부랴부랴 경기장으로 향했다. 울산은 예상보다 훨씬 더 추웠다. 심지어 서울보다도 더....




오랜만이다. 밤에 보는 빅크라운은 더 멋지다. 몇 년만에 내가 응원하는 팀의 홈구장을 오는건지 모르겠다. 늘 원정팀 석에서 조용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서러움이 날려지는 느낌 이었다. 무척 반가웠다.




와~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 확 바뀐 경기장이 눈에 들어왔다. 좀 더 팀 색이 묻어나는 느낌 이었다. 구단과 울산시가 노력했다는데.. 선수들 보다 경기장이 먼저 눈에 들어왔으니, 잘 바뀌긴 했나보다. 갑작스런 일정에 또 평일 저녁이라 관중은 생각보다는 적었지만, 그래도 제법 들어차고 있었다. (파란색 유니폼이 울산, 핑크색 유니폼이 홍콩의 키치 이다.)






좌석이 보다 편하게 다양하게 바뀌었는데.. 마치 유럽의 경기장에 와 있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원래도 아름다웠지만, 오래된 경기장인 만큼 칙칙함은 있었었다. 1층 스탠드만 바뀐 것이지만 이것이 굉장히 큰 변화의 느낌이 들었다. 경기장 감탄은 여기까지만 하고...





예상대로 경기는 치열했다. 접전까지는 아니었지만 선수들의 몸상태나 팀의 상태 정도 등등을 봤을땐 충분히 예상 했었다. 선수와 감독이 바뀐 만큼 울산의 철퇴는 보기 힘들었다. 체력적으로 덜 올라왔으니 패스를 통해 좌우를 흔들고픈 욕망이 느껴졌다. 보는 내내 조마조마 했다. 호흡도 잘 안 맞았고 체력적으로 힘들어 보이기도 했다.





상대의 수비적인 축구가 한 몫 톡톡히 했던. 양팀 간의 지루한 공방전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던 찰라, 프리킥 기회를 얻은 울산이 골을 넣었다. 맞고 나온 슈팅을 재차 슈팅해 얻은 소중한 첫 골 이었다. (김성환 선수가 동료들에게 축하를 받고 있다) 나는 이걸 두고 이른바 몸빵이 통했다 라고 말하고 싶다.





전반이 종료되기 전 터진 골로 울산이 1-0 으로 앞선 채 끝이 났다. 오랜만에 찾아온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향한 희망이 무르익고 있었다. 이때 까지만 해도 말이다.







잠시 쉬는 시간, 다시 경기장을 바라봤다. 내가 전국의 경기장은 다 다녀봤지만 개인적으론 가장 아름다운 구장이라 생각한다. 축구장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기장 시야. 이 부분은 포항의 스틸야드와 더불어 국내 최고 수준이라 생각한다. 문수구장이 아니라면 단연 스틸야드가 시야가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틸야드는 경사각이 심해 조금 위험한 수준이라 생각들기도 한다. 아무튼 후반전은 또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 지,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으로 바라봤다.




후반 역시 .. 여전히 맞지 않는 호흡, 그리고 선수들의 체력이 문제 였다. 지루한 공방전이 이어지던 그 때. 일격을 맞았다. 키치에서 뛰는 한국인 선수는 두 명. 그 중 김봉진 선수에게 헤딩골을 내주고 말았다. 1-1 이 된 후반. 그들도 '이 정도라면 한 번 해 볼만 하다.' 라는 심리가 깔려 있던건지. 울산을 향해 맹공을 퍼 부었다. 그 중 울산에겐 위험한 위기의 순간도 몇 있었다.




이겨야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데 후반 종료까지 1-1 무승부. 연장전이 결정 되었다. 아무리 울산이 준비가 안 돼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일줄이야. 라는 생각을 나 뿐 아니라 많이들 가졌을 것이다. 나중에 들은 후문이지만, 갑작스런 일정에 스페인에서 급하게 돌아온 선수들의 장시간 비행이 컨디션 회복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변명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홍콩보다 홈인 울산 선수들의 시차 적응이 더 필요한 시기였다는 얘기가 되네. 그럼에도 프로라면 좀 더 보여줬어야 했다. 제법 아쉬웠던 경기력 이었다.




후반 종료 휘슬이 울리자, 많은 관중들이 경기장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다급해진 직원들의 안내방송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연장전이 이어지니 나가지 마시라고. 좌석 끝 통로쪽에 나가려다 잡힌(?)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연장 전 후반 경기도 끝났다. 양팀 다 추가득점 없이 1-1 스코어를 그대로 유지했다. 이젠 심장 약한 사람들은 맨눈으로 못 본다는 승부차기만이 남았다. 관중들이 골대 뒤로 이동했다.









긴장하며 바라보던 승부차기. 결과는 4-3 울산의 승리!! 우리의 용대사르 (김용대) 가 해 냈다. 아시아의 챔피언인 울산이 홍콩 팀에게 이토록 고전하며 연장전에 이어 승부차기까지 가다니. 많은 사람들은 실망도 했을테고, 걱정도 많이 했을테다. 그러나 응원하는 관중 중에는 욕하는 사람보다 응원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아마도 그들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같지 않았을까. 라며 자위해 본다. 지금은 결과만 보기로.




비록 내용은 아쉬웠지만, 5년만에 다시 밟게 된 챔피언스 리그에 의의를 두기로. 희비가 엇갈린 양팀 이지만, 키치의 잠재력은 높이 살 만 했다.




팬들은 충분히 즐겼다. 상대를 이겼을 때 부르는 '잘 가세요~' 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AGAIN 2012" 깃발도 올라왔다. 2012년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바로 이곳. 빅크라운에서 벌어 졌었다. 그때 터뜨린 우승 샴페인이 팬들의 기억 속엔 아름다운 추억 이었기에. 오랜만에 팬들은 그때의 감성에 잔뜩 젖어 있었다. 그때의 감동을 또 한 번 누리고 싶다. 본선에선 잘 하리라 믿는다. (당시 울산은 전 경기 승리로 무패 우승을 일궈냈었다. 그야말로 아시아의 깡패 였었다. 결승전에서 조차 3-0 완승!!)





선수와 팬들이 오랜만의 만남. 그리고 웃었다. 많은 사람들과 언론은 이 경기를 '졸전' 이라고 말했고. 한 없는 악플과 수치심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다. 그런데.... 나는 웃었다. 나는 울산의 가장 인상적인 시기를 묻는다면, 울산을 아시아의 깡패로 만든 김정남 감독. 울산을 아시아의 챔피언을 만들었던 김호곤 감독의 시기도 물론 좋았지만. 뭐든 화끈했던 울산의 가장 상남자 면모를 보였었던 90년대의 고재욱 감독 시절이라 말하고 싶다. 이날 경기에서 아주 조금 이었지만 그 향기가 느껴져서 무척 반가웠다.


철퇴 축구를 좋아했던 이들에겐 낯설기도, 실망 스럽기도 했을테다. 하지만 뭔가 조금씩 꿈틀 거림이 보였다. 그리고... 누군가가 눈에 들어왔다. 신인 '한승규 (42번)' 의 이름이 깊이 새겨졌다. 마치 아스널 소속의 젝 윌셔나 토트넘의 케리 윙크스가 연상되기도 했다. 물론 다르겠지만. 그냥 느낌이 그랬다. 앞으로 어떤 선수로 성장하게 될 지 정말 궁금해졌다.




선수들이 인사를 하러 왔다. 수고했다고 축하한다고 서로들 인사를 건넨다.




이번 시즌 울산을 이끌게 된 김도훈 감독이 처음으로 팬들 앞에 섰다. 열심히 하겠다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선수시절 이루지 못했던 꿈 감독으로써 울산에서 꼭 이루길 바란다.




홍콩 키치 소속의 김동진 선수가 인사하러 왔다. 반가웠다. 울산의 선수였었기에 팬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반가움을 표했다. 수줍은건지 아쉬운건지. 아주 짧은 인사만 하고 돌아갔다. 이날 경기에서 울산이 고전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었던 김동진 선수. 부디 아프지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다 마지막엔 울산에서 인사할 수 있기를.







돌아가기 전, 언제다시 오게 될지 모를 빅크라운을 담았다. 큰 왕관을 닮았다해서 '빅 크라운' 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 문수구장의 밤이 깊어갔다. 처음 이 경기장이 지어졌을때 개장 경기 <보타포고 전>도 생각나고. 여러 생각들이 오고 갔다.


아시아의 챔피언이 됐을 때도. K 리그의 챔피언이 됐을 때도. 이곳에서 함께 했기에 더 기억이 많이 났다.


아름다운 경기장 만큼이나, 아름다운 경기력으로 많은 관중들이 이곳에서 승리의 함성이 이어지길 바래본다. 그 많던 관중들이 어디갔나 하겠지만, 사실 이 경기장엔 비밀이 있다. 가 본 사람들은 안다는.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 처럼 관중석 1층 스탠드가 지하라는 것. 그리고 4만 명이 넘는 관중이 다 빠져나가는데 드는 소요시간이 10분 남짓이라는것. ㅎㅎㅎ


다만, 경기장에 가기가 너무 불편하다. 대중교통이 거의 전무하다 싶을 정도로 열악하다. 물론 개인 승용차가 있다면 얼마든지 편한 곳.


나는 한참을 서서 이곳에서 감상과 감성의 오고감을 즐겼다. 나의 맘도 모르고 바람은 무척이나 새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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