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 모처럼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청주에 사는 친구가 청주로 오라고 했다. 마침 인근에 살던 친구와 함께 청주를 찾았다. 새로 이사했다며 집 소개며 이곳저곳을 안내했다. 예전에도 가 본적은 있었지만 다시 찾은 청주는 좀 더 '설레임' 이 더 생겼던 것 같다.
청주에 가 볼만한 곳 없냐니깐 '수암골' 을 추천했다. 우리는 그곳으로 향했다. 마침 내가 한창 즐겨보던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촬영지이기도 한 그곳을 서둘러 찾아봤다.
'팔봉제빵점'. 수암골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만난 곳이다. 그곳에서 김탁구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도 했었지만, 그들은 당연히 없었지. 촬영이 있는 날이면 그곳을 보기 힘든데.. 아무튼 어떠한 흔적들이 남았을까 기대가 됐다.
역시나 인기가 많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주 촬영지인 팔봉 빵집을 안과밖을 점령했다. 원래는 갤러리로 운영되던 곳이지만, 촬영을 위해 새롭게 꾸며진 이곳이 정말 빵집처럼 보였다. 드라마가 끝난지 꽤나 지난 지금까지도 이곳의 명소다. 물론 빵은 여기서 직접 만드는 것 같지는 않았다.
김탁구를 닮은 짱똘같은 또라이 녀석과 곰같은 녀석이다. 마침 길을 지나던 아이가 이 둘이 이상한 놈들이란걸 미리 알아본 눈치다.
뭔가를 찍고 있다. 뭘 찍는건지. 폼은 제법이다. 말그대로 폼만 제법이다.
드라마에서 자주봤던 테라스. 전망이 아주 좋다. 청주의 주요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하늘이 아주 맑고 좋았다. 기와지붕도 친숙하고 좋다. 수암골에서는 드라마 촬영을 많이 했다. 아름다운 벽화마을로도 유명한 이곳을 쉼 없이 걸어다녔다.
난 이런 느낌이 참 좋다. 오래 전 기억이 난다랄까. 지금은 죄다 도시가스지만, 예전엔 밥 짓다가도 가스 털어졌다고 저 무거운 가스통을 배달 시키던 그런 때도 있었지. 왜 늘 장독대 주변에 가스통이 함께 공존해야 했던건지 지금도 궁금하다.
아~ 이뻐라. 집 주변의 싱그러운 풍경도 멋졌지만, 벽에 그려진 아름다운 그림에 눈길이 가며 더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너무도 잘 어울리는 집이었다.
이런 골목에서 오는 느낌이 참 좋다. 어릴 때 이런 골목을 마구 뛰어다니면 집집마다 마당을 지키던 개가 짖어대고, 나는 거기에 놀라 넘어지고 울고 했던 .. 그런 아련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내겐 가장 멋진 놀이터였던 골목. 지금도 골목만 보면 나도 모르게 더 걷게 된다.
발레리나가 그려진 벽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봤다. 소녀의 어떤 꿈이 느껴진다랄까. 그녀의 얘기를 더 듣고 싶었던것 같다.
웃긴 놈들이다. 아니 미친놈들이다. 나랑 같이 다니다가 이렇게 됐다고들 하는데, 니들은 원래 그런 놈들이었어.
서로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내가 어떤 모습인지 니가 어떤모습인지. 그냥 그대로 담았다. 어릴 때부터 같이 축구하던 단짝 공격수.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많은 만큼.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참 편하다. 눈빛만 봐도 서로 패스 할 수 있었던 가장 편한 사이. 지금도 참 편하다.
수암상회. 아주머니가 뭔가를 꺼내시는것 같은데 한참을 기다려도 꺼내 보이시질 않았다. 이걸 보니 왠지 하드가 땡겼다. 왠지 그랬다.
낙서가 많았다. 어딜가면 왜 이렇게들 다 사랑고백을 벽에다 하는지 모르겠다. 해서는 안될 것이지만, 그림이랑 어울렸다. 그래도 이런건 좀 없어져야 된다.
낯익은 곳이다 라는 생각을 했는데, 드라마 <카인과 아벨>에서 한지민이 살던 집이었다. 그곳에서 촬영된 스틸컷들이 빨랫줄에 걸려 있었다. 이곳을 지나며, 남자들은 한지민에 여자들은 소지섭에 빠져서 감성적으로 바라봤다.
걷기왕인 나를 따라 다니다보니 이놈들 지쳤다. 이제 고만 걷자고 아우성 들이다. 먹보의 입속으로 집어넣고 싶었다. ㅋㅋ
골목을 빠져 나왔다. '뻥쟁이' 가 눈에 들어온다.
캬. 오랜만이다. 이런 굴뚝. 연탄 보일러 였던 어린 시절. 저곳의 연기만 보고도 불 잘 피웠는지 알 수 있었던.. 가슴 아팠던 기억이 많이 떠올랐다. 벽에 붙여진 타일이 좀 더 멋스럽게 표현되고 있었다.
내려와서 보니 더 아름다운 곳. 뜨거운 햇살 만큼이나 바람이 상쾌하고 시원했다.
수암골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왔다.
오랜만에 봤던 공중전화 부스. 삐삐 쓸 땐 정말 많이 찾았는데.. 아, 군대 있을때도. 콜렉트콜로 걸었다가 상대방이 거절해서 한참을 좌절했었던 기억도.. 아무튼 이 놈은 설정이 참으로 어설펐다.
빵집 앞에 공중전화 부스. 드라마에서도 자주 나왔었던 장소다. 이 정도로 가까웠다는 사실에 더 놀라웠다.
하늘을 머금은 창이 이뻤다.
한눈 파는 사이 이 녀석의 쌍가마를 찍었다. 가르마가 두 개면 장가를 두 번 간다던데.. 부디 그리되진 말기를..
더워서 에어컨 바람을 좀 쐴겸 빵집으로 들어와 봤다. 빵을 팔고 있기는 한데 양도 적었고 대부분 드라마 소품 이었다. 2층은 카페, 1층은 빵집으로 돼 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싶었지만 사람이 많아서 그냥 몸만 좀 식히고 나왔다. 그나저나 '고뿌'가 뭐지?
더워도 다리 아파도.. 눈 호강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있어서도 그렇겠지만 친구들과 함께해서 좋았던 것 같다. 낯선 곳에 간다는 설레임. 그것만으로도 충분한데, 함께 걷는 것. 그것이 주는 안정감은 왠지 더욱 설레게 만드는 것 같다.
- 2010년 7월.
# 내가 사는 곳도 다 좋지만, 친구가 사는 곳은 어떤 곳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나도 늘 계속 만나오던 그런 모습들도 좋고, 무엇보다 간만에 듣게 되는 진득한 사투리로 "밥은 먹고 댕기나? 단디 챙기묵아라." 라는 말이 참 고마웠던 시절 이었다. 친구는 서로의 안부만 물어줘도 참 고맙고 든든한 그런 존재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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