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이야기2015. 11. 6. 14:55
     



ⓒ 인천 유나이티드.


악동, 풍운아, 다람쥐 .. 등은 모두 "이천수" 란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다. 더불어 연관 검색어로 '비운의 축구천재' 라는 수식도 붙기도 한다. 평소 거침없는 언행으로 호불호가 갈렸던 당찬 아이 이천수는 이제 어느덧 서른의 중반을 넘어 평생을 바쳐 열정을 다했던 그라운드를 떠난다.


그의 최고의 전성기라 불리던 200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그는 대표팀은 물론이고 "울산" 에서 그의 축구인생 최고의 정점을 찍게 된다. 이때부터 아시아 무대에서는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 뿐. 이었을 정도로 아시아의 깡패, K리그의 사기유닛 이었다. 울산으로 보면 너무나 고맙고 짠한 선수다. 애증이 아니라 적어도 울산에 있었을 때 만큼은 울산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정도로 대단했고. 판타스틱한 선수였다. 당시엔 이천수의 런닝 세레머니를 보기 위해 수 많은 관중이 홈 구장 이었던 빅크라운 (문수경기장)에 집결했다.


사실 처음 이천수가 울산에 올 당시만 해도, 이천수는 고교시절 부평고를 고교축구 최강자로 만들며 최태욱과 함께 최고의 선수였다. 하지만 프로는 다르다. 아무리 이천수라 해도 울산과 같은 큰 명문클럽에서 뛰는 것 자체에 의구심을 가지고 본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차범근 감독 시절부터 고재욱에 이르기까지 울산은 전형적으로 4-4-2 전술을 구사했고 양쪽 날개 (윙어) 들의 역할이 큰 그러한 전술을 즐겨 썼었다. 이전 고재욱 감독 시절 울산은 가장 많은 인기를 끌었다. 이기는 것보다 더 박진감 넘치는 전개에 매료된 울산팬들은 이미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었다. 거기다 수비수 출신의 김정남 감독이 부임 후 줄곧 수비 축구를 지향해 많은 팬들이 문수구장을 찾지 않았다. 단지 외곽지역에 있어서 라는 등의 말들은 변명일 뿐이었다. (사실 경기장 찾아가기가 쉽지는 않다 - 게다가 부대시설이라고는 슈퍼같은 매점만 있었을 뿐) 암튼. 기존에 '정정수(좌) - 신홍기 (우)' 가 폭발적인 드리블과 돌파력. 뛰어난 킥력은 많은 이들에게 윙어에게 기대를 더 많이 거는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이천수에게 거는 기대감은 당연히 더 높았다. 게다가 등번호도 '10번' !!! 축구 선수에게 있어 10번은 번호 이상의 의미를 지녔지. 그런 그에게도 그의 '10번' 등번호는 엄청난 부담감 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든 우려를 다 털어내고 "내가 바로 이천수다" 라는 인식을 강하게 뇌리에 박아줄 만큼 환상적이었고, 다시 빅크라운으로 관중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건 당연한 결과였다. 10번이 가장 잘 어울렸던 선수였다.


울산에게 있어 90년대에는 '김현석' 이 있었다면, 2000년대에는 '이천수' 가 있었다. 그는 울산에 있어 가장 환상적이고 가장 화려한 선수였다. 그런 그가 울산을 떠날 땐 모두가 울었고. 자식을 잃은 마냥 모두가 힘겨웠다.


그의 인생에는 정말 굴곡이 많다. 누구보다 짙었다. 참으로 안타깝다. 이천수 ... 그를 떠올려보면 우선 그와 나는 동갑내기 친구다. 울산에 있을 당시 우리는 서포터 내 서포터를 주축으로 이끌던 맴버들이 하나 둘 씩 떠나가는 것을 보고 우리만의 모임 81년생 모임인 '아미고' 를 만들었고, 그때 당시 이천수 선수도 가입해서 함께 어울렸었더랬다. 같이 맥주도 마시기도 하고 (사실 이천수는 술을 잘 마시지 않았다 - 자기관리가 철저했다) 같이 노래방도 가고 그렇게 어울렸고 이런 저런 대화를 많이 나눴는데 그는 정말 열정적이고 순수하고 착했다.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그의 안티는 늘어만 갔다. 지금은 솔직함이 대세라 하지만 당시에는 그 솔직함이 그를 내내 괴롭혔다. 언론이 먼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럴수록 그를 아는 사람들은 안타까워하며 함께 지쳐갔다. 아무튼 평소에는 차분하고 조용한 그가 불의에는 당당히 맞서는 그의 모습이 정말 좋았다. 믿지 않겠지만 내가 본 축구선수 중에서 가장 싸가지 있었다. 누구보다 여린 그가 너무도 걱정됐었다. 지금의 그는 한 아이의 아빠로써, 한 여자의 남편으로써 그리고 인천에 있어 가장 든든한 조력자로 많은 부분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참 힘들었을 거다. 그를 지켜주지 못함은 참으로 안타깝고 미안하다.


어쨌든 그런 그가 이제 .. 그라운드 안이 아닌 "밖" 을 향하려 한다. 은퇴만큼은 울산에서 하길 바랬지만, 고향에서 시작한 축구를 고향에서 마무리하는 그런 행복함을 뺏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기보다 그에게 "축복" 을 바라고 싶다. 그의 제 2막의 인생을 응원한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늘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축구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길...






* 늘 최고였던 그를 추억하며 ..



"친구야, 그동안 멋진 축구를 보여줘서 고마웠다. 넌 늘 최고였고, 팬들은 절대 너를 잊지 않을 거야. 이젠 우리가 네 곁에서 너를 응원할게. 행복하자!!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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